각설하고, '김여사 주차사고'가 한 때 유행했기에 떠돌아다니는 사진을 모아보았다.
다만 씁쓸한 것은 왜 이것을 '김여사'의 이름으로 정렬했느냐 하는 것이다.
김씨, 김선생, 김비서는 재미없다. 무조건 김여사여야만 한다.
순서도, 내용도 상관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사'로 묶어냈다는 것.
우리의 '여성'에 대한 시각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주택가를 벗어나, 겨울이란 핑계로 찾지 않던 번화가를 찾았다. 겨울이라지만 역시 번화가는 번화가다. 많은 사람들, 고막을 찢을 듯한 큰 음악소리, 호객행위하는 사람들 등... 그렇게 눈에 익은 풍경들 속에서 유독 이목을 끄는 것이 있었다. 거리 한 가운데를 무리지어 행진하는 소녀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회색인(뒷모습만 보았다) 그들은 범상치 않은 포스를 충분히 내뿜고 있었다. 퍼포먼스 같은 것인가? 요즈음 아이돌은 좀비도 콘셉트라는데 그런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회색에 가려진 그들의 복장이 다시 한 번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뭔가 익숙한 복장. 소녀들에게 어울리는... 그랬다. 그들이 입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교복이었던 것이다. 연달아 떠오르는 추가 단어. 맙소사! 바야흐로 때는 '졸업시즌'이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역시나 졸업식 관련 뉴스들이 쏟아졌다. 단, '스승', '배움', '대학' 그런 키워들과는 별 연관성이 없는 뉴스들, '알몸 동영상', '가혹행위', '학교폭력' 등의 키워들로 점철된 뉴스들이었다. 뭐...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다. 낮에 직접 본 그 현장조차도 '졸업이구나'라며 (쉽게는 아니었지만) 넘겨버린 나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약간의 비슷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대부분이 밀가루 세례에 그쳤던 추억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상황이 많이 진전(?)되었다. 간장, 케첩, 밀가루는 유행이 지난듯 하고, '알몸 퍼포먼스'며 '교복찢기' 등에 비하면 이목을 끌지도 못한다. '성인식'이랍시고 술퍼먹고 분수대에 투신하며 온갖 가학을 일삼는 대학싱들의 체험을 몇 년 앞당겨 미리 체험하고 있는지도 모를 그들이다.
지금은 물론 더 심하지만 나 때도 그랬다. '대학'이라는 것 때문에 모든 제재며 처벌은 정당화되었다. 심지어 아프다는 데에도 조퇴가 허락되지 않았고(핑계인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선풍기가 돌아가지도 않는 여름방학 기간의 교실에서도 마냥 '공부'를 강요당했다. 두발제한, 복장제한, 외출제한 등 모든 것이 그냥 '대학'이라는 이유면 설명이 되는 줄 알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인 줄도 모르고 잠시나마 음악이나 그림에 빠지면, "대학가서 해라!", 이성에 관심이 생겨도 "대학가서 미팅하면 되쟎냐!", 얼굴에 신경이 쓰이거나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도 "대학가서..."라는 대답에 전혀 반기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졸업의 순간... 모든 통제의 고삐는 그 명분을 상실한다. 아니, 커질대로 커진 그들의 욕망과 반감에 아무 대책도 취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도 갖은 핑계대며 학생들을 학대(?)하던 학생부 선생님이 수능 바로 다음 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등교한 학생에 아무 말도 못했으니까. 고삐 풀린 망아지,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의 질주는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더 무섭다. 조금이라도 그들을 공부기계가 아닌, 학생이 아닌, 인격체로 대했더라면, 책상 앞에 쑤셔넣지만 말고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마주쳤더라면 그들의 폭주가 이리도 처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부가 미래를 위한 것, 잘 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의심스럽다. 직업도 꿈도 '대학가서' 생각하라는데 무엇이 과연 미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대학생 성인식의 진풍경이 고교졸업식으로 이어지고 다시 중학교 졸업식으로 재현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당연한 수순이다. '명문대'가 '명문고'가 되고 다시 '명문중'으로 이어진다면, 초등학교 졸업식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 유치원 졸업식은 오죽할까. 무조건 '대학가서!'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명문대가고 성공하는 것일까. 최근, 논란 속에 추진되던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 인권 조례'의 최종안이 발표되었다. 호미로 막을 것을 열심히 가래로 돌려막던 상황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소식임에 분명하다.